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싶다. 오랫동안 상상하고 염원해왔던 일이다. 언제부터 이런 일탈을 꿈꿨던가.
내가 기억하는 일기의 시작은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 작은 스케치북에 그려 놓았던 조악한 그림과 글씨다. 그려 놓았다. 보냈던 하루를 그려 놓을 수 있었다. 지금은 무언가를 그릴 수 없는 사람처럼 말하고 있지만 정말 그랬다. 내 그림 솜씨에 대한 자조와 실망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자조와 실망을 느낄만한 세상으로 나아가기엔 아직 이른 시기였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빠. 동생. 그리고 당시에는 하얀 털을 가지고 있는 모든 개에게 붙여지던 백구라는 이름의 반려견. 그것이 실망과 자조라는 감정이 없던 나의 어린 시절이자, 조악한 그림과 글씨로 기록할 수 있었던 모든 하루이며, 세상이었다. 나는 작은 스케치북 일기장에 그것을 그려 놓았다.
나는 백구 집에 들어가 컹컹 짖었어요. 엄마랑 아빠가 웃었어요. 백구가 눕는 이불에서 백구 냄새가 났어요. 동생도 들어오고 싶어 했어요. 엄마랑 아빠는 안된다고 했어요. 백구가 자야 되니까 나는 백구 집에서 나왔어요. 동생이랑 씻고 엄마가 책을 읽어줬어요. 호랑이 뱃속으로 들어간 사람들 이야기였어요. 엄마가 읽어주는 책은 재미있어요. 끝.
아직도 남겨져있다. 그곳에. 작은 스케치북의 한 페이지에. 유치해서 정확하고, 단순해서 거짓과 꾸밈이 없는. 나의 일기.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그려 놓았다. 일말의 자조와 실망의 기미조차 없다. 아니. 그려서. 넣었구나. 확인하고 깨닫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