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없는 빛
사람의 키만큼이나 자란 꽃무리 속에서 목을 꺾습니다.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과 감출 수 없을 것 같은 마음. 어떤 마음이 더 높이 자랍니까. 얼마나 목을 꺾어야 이 꽃들이 나를 가려줍니까. 마음은 나의 것입니까. 마음의 것입니까. 나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데 왜 간혹 두근거립니까.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 꽃무리를 쓸고 갑니다. 꽃대가 휘청입니다. 목이 길어 서럽습니다.
슬픔은 왼쪽에 있어.
초 여름, 초하루, 초 저녁. 초침이 앞서간 시간의 왼쪽이 욱신거립니다. 제 키를 모르는 꽃들은 멍 자국처럼 계속 피어나고. 괜찮다. 괜찮지 않다. 끝 모를 꽃점의 시간. 그 사이에 나는 무엇도 되지 못한 채로. 부르다가 멈춘 노래처럼. 거의 다 온 것처럼. 꽃무리의 한 가운데서. 겨우 잠에 들어 꿈에 도착한 것처럼. 여기는 어디입니까. 내가 나를 잊으려던 시간은 얼마나 지났습니까. 무엇이 두려운가 묻는다면. 먼 미래에도 내가 나로 발굴될 것 같은 기분.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면 눈 주위에도 근력이 생깁니다. 겨우 꽃잎을 찢을 정도로 가볍고 가려운.
비가 내릴 것을 예감하면 당신을 찾는 경향.
소낙비보다 먼저 도착한 당신. 당신이 나를 파냈습니까. 간신히 녹아 사라지려던 나를 발견했습니까. 왜 웃는데 울지 말라고 합니까. 멍이 피고 지고. 몸이 삭아가는 몇 세기 동안 이해의 문법이 바뀌기라도 한 것입니까. 그윽한 떨림. 미온한 눈빛. 당신은 슬픔의 오른쪽. 기도의 바깥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질문이 많아서 미안합니다. 대답 대신 어깨를 조금 빌려주시겠어요. 뻣뻣이 굳은 목이 오래전 출발한 빛처럼 조금 고단합니다.
마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원 없이. 흔들리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