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헨(Märchen)
작은 이야기 혹은 요정담. 계보가 유럽 민담에 속하고 단편소설의 형식을 취하는 이야기를 뜻하는 말. 마술, 요정, 신화적 존재같은 환상적인 소재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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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 대한 이야기다. 혹은 너를 향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종종 너에대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상한 사람"
너는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받아 들인다. 너는 오히려 가장 심도깊게 너를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흐뭇해 할지도 모른다. 너의 다름이, 너의 독특한 취향이, 너의 고유한 낙관이, 네가 세상에 존재하는 가치이자 행복의 원천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너는 이상한(ideal) 사람. 너는 거울 속의 너를 보며 작은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어느 날 너는 너의 이상과 그들의 이상이 뜻하는 바가 같지 않았음을. 그들에게 비춰진 너의 다름이, 너의 독특한 취향이, 너의 고유한 낙관이 때론 틀린 것이었음을, 그들이 요하는 평범함을 벗어나는 일이었음을, 아이들의 철없는 백일몽 따위였음을 알게될지도 모른다. 너는 이상한(strange) 사람. 다시 거울 앞에 선 너는 너를 보며 깊은 한숨을 쉰다.
너는 네가 사는 마을에서 성대한 파티가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집집마다 장미빛 봉인이 찍힌 초대장이 날아오고, 온 마을의 사람들은 현란한 차림과 들뜬 기분으로 파티가 열리는 연회장으로 향한다. 휘황찬란한 샹들리에. 은색 쟁반에 담겨오는 만찬. 초청된 밴드와 가수들의 축하공연. 너는 그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다. 너는 너에게 실망한다. 너는 너의 이상을 원망하고 후회한다. 너는 너의 내부에서 찌르듯이 울리는 외로움의 신호를 감지한다. 감지된 신호는 일종의 반동이 되어 너를 자극한다. 너는 눈을 질끈 감는다. 너는 마을의 사람들이 연회장으로 떠나 적막하게 남겨진 거리로 뛰쳐나간다.
거리에서 너는 또다시 너를 마주한다. 비어버린 상점들의 쇼윈도에 비친 너마저 너를 외면하는 듯한 기분에 빠진다. 너의 이상을 바라보던 이들의 조롱하는 듯한 눈빛과 조소를 머금던 입꼬리가 너의 뒤를 따라오는 듯한 기분에 빠진다. 너는 흠칫 놀라 도망치듯이 걷는다. 너는 걷다가, 누구도 찾지 못할 장소를 찾아 계속 걷다가, 인적 없는 숲에 도착한다. 너는 숲속의 작은 공터에 지친 몸을 뉘이고 잠에든다. 너는 꿈을 꾼다.
꿈속에 너는 여전히 너다. 너의 다름에, 너의 독특한 취향에, 너의 고유한 낙관에, 그러니까 너의 이상에 실망하고 실의에 빠져있는 너다. 여전히 홀로인 너다. 너는 모로 누운 채 멍하니 고민한다. 꿈인가. 꿈 아닌가. 이것이 꿈이라면. 여전히 꿈이라면. 너는 꿈에서조차 너를 성대한 파티로 이끌어 줄 마녀도, 유리구두를 찾아 줄 왕자도, 입맞춤으로 저주를 풀어줄 공주도 없다는 걸 깨닫는다. 너는 또다시 외로움의 신호를 감지한다. 너는 조그맣게 훌쩍이기 시작한다. 얼마 후 너는 뿌옇게 흐려진 시야로 조금 떨어진 수풀 속에서 튀어나온 흐린 형상을 본다. 너는 눈을 비빈다. 너의 눈에 들어온 것은 털이 새하얗고, 귀가 길고, 눈이 빨간 토끼. 너는 토끼를 바라본다.
토끼는 너를 눈치채지 못한다. 토끼는 고개를 두리번 거린다. 토끼는 두발로 땅을 딛고 일어선다. 토끼는 수풀 속을 뒤져 밑단이 펑퍼짐한 청바지와 털과 같은 색의 하얀 후드를 꺼내입는다. 토끼는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토끼는 이어폰을 꺼내 긴 귀에 꽂는다. 토끼는 고개를 흔들며 흥얼거린다. 그리고, 너를, 발견한다. 토끼는 잠깐 놀라지만 호기심 가득히 너를 바라본다. 토끼와 너는 거리를 두고 마주본다. 토끼는 조심스럽게 너에게 다가간다.
너는 토끼에게 무슨 질문을 할까. 너는 이상하고, 그래서 조금 외롭고, 그래서 홀로고, 그러나 여전히 너는 너고. 너는 무슨 말을 먼저 꺼낼까. 아마도, 너는 토끼에게 이상한. 그러니까 가장 너다운 질문을 할 것이다.
"발, 아니, 손. 잡아봐도 돼요? 만져보는 게 소원이었거든요."
"..."
너는 토끼가 너의 말을 이해할지 고민한다. 너는 조용히 손을 내민다.
토끼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너를 바라본다. 네가 내민 손을 바라본다. 잠시의 침묵 뒤에 토끼도 너에게 손을 내민다. 무심하지만 무례하지 않은 태도로. 거칠지만 정중한 자세로 너에게 손을 내민다. 그리고 토끼는 긴 귀를 쫑긋 거리며, 빨간 눈을 깜빡이며, 너에게 속삭이듯 말할 것이다.
"이상(ideal)한 나(我)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토끼의 보드라운 손을 잡는 순간, 너는 잠에서 깬다. 여전히 숲속이고 사위는 고요하다. 돌연히 너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집으로 돌아가 옷장 안의 펑퍼짐한 청바지와 하얀색 후드를 꺼내입고. 너를 위한 만찬과 음악을 준비하고. 오로지 너만을 위한 파티를 열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너를 향했던 조롱과 조소와 오해를 무시한채로. 너의 자조와 염오를 긍정한채로. 너를 성대한 파티로 이끌어 줄 마녀도, 유리구두를 찾아 줄 왕자도, 입맞춤으로 저주를 풀어줄 공주도 없지만. 그곳으로. 너는 너를 초대할 것이다.
꿈인가. 꿈 아닌가. 너는 더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너는 여전히 너다. 어디에서도 달라질 것 하나 없는 너다. 너는 여전히 이상하고, 그렇지만 이제는 전혀 낙심하지 않고, 누구보다 그것을 긍정하는 너다. 너는 숲속을 달려 나온다. 너는 너에게로 돌아간다.
네가 떠나온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수풀이 요란하게 들썩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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